펼쳐진 일기장  
Front Page
Tag | Location | Media | Guestbook | Admin   
 
Bubble wrap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일하고 있는 랩이 속한 과 전체가 이사를 간다.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가는데, 우리 랩이야 컴퓨터 밖에 없지만, 다른 랩들은 각종 실험도구가 많아서 가까운 건물로 가는 데도 전문 무버들이 약 한 달에 걸쳐 이사를 진행하고 있다. 때문에 복도 곳곳에는 bubble wrap들이 널려있다. 이렇게 큰 버블랩, 일명 뽁뽁이들을 보니 옛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것 같다. 반 아이 중 하나가 신기한 것을 가지고 왔다. 책받침 만한 크기의 반투명 비닐인데 올록볼록 올라온 것을 만져보니 참 보드랍고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그걸 터트리는 것이다. 그 버블이 터지는 소리가 참 신기하고 한번 터트리면 없어지는 버블을 나도 하나 터트려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너무 짧아서 그 느낌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그 버블랩은 그냥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그 신기한 물건을 어디서 구한 것일까? 난 궁금해서 물었지만, 이건 살 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나에게 엄청난 일이 생길 줄은 그 당시만 해도 미처 모르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들떠있었다. 내 키보다도 더 큰 당시로서는 최신, 고급 냉장고인 대한전선의 원투제로 냉장고를 부모님이 구입하셨기 때문이었다. 냉동칸이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작은 일제 산요 냉장고만 보다가 냉동고가 따로 있는 냉장고를 보니 너무 신기했다. 이제 샤베트도 마음대로 많이 만들어 먹을 것을 생각하니 좋기만 했다. 냉장고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냉장고였다.

그런데 당시 내겐 더욱 신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이 냉장고 전체를 휘감고 있던 버블 랩을 발견한 것이다. 난 어머니께 이 '귀한' 버블 랩을 조금 얻어서 사용해도 되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귀한 것을 어디에 다시 써야할지 난감해 하시며 버리시겠다는 것이 아닌가! 신이 나서 나는 손가락으로 톡톡 터트려 보았다. 정말 신났다. 동생에게도 터트려보라고 했지만, 손가락 힘이 약해서 잘 터트리지 못했다. 또 냉장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전에 보았던 것에 비해서 좀 더 질긴 점도 있었다. 난 아주 엄청난 사치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버블랩을 한꺼번에 여러 개를 터트려보기로 한 것이다. 발로 밟아보니 투두둑 투두둑 동시에 여러개가 터지는 것이 아닌가. 동생과 한참을 그렇게 밟아도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엉덩이로 앉아서 터트려도 보았다. 하지만 잘 터지질 않았다. 내 엉덩이는 너무 부드러운가보다. 무릎으로, 팔꿉치로 계속 터트려 보았다.

그렇게 신나게 버블랩을 가지고 놀고는 깨끗한 부분을 골라 가위로 큼지막하게 몇 조각을 잘라서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다. 많이 넣고 싶었지만, 서너장 잘라 넣으니 가방이 너무 부풀어 더 넣을 수가 없었다. 내일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인심쓰듯 나누어주는 것만 상상해도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톡톡 터트리던 버블랩을 학교에서 한무더기를 만나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톡 터트려 보았다. 역시 버블랩은 터트리는 재미가 제일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bubble wrap, 동화, 버블랩, 뽁뽁이


빨간 신호등
빨간 신호등을 보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신호등은 아직 내게서 멀기 때문이다.
새벽이라서 그런가? 속도를 줄이지 않았는 데도 신호등은 좀체로 가까워지질 않는다. 점점 신호등이 가까워진다. 드디어 신호등은 초록으로 바뀌었다. 초록으로 바뀌었어도 속도를 더 내지는 않는다. 주어진 시간 안에 지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과학은 무엇인가? 빨간 신호등임에도 난 남은 거리를 가는 시간이면 충분히 초록 불로 바뀔 것을 예상하는 근거는 바로 과학적인 사고이다. 아니 신념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분명 빨간 불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리 수가 있는 것은 바로 과학적인, 혹은 합리적인 믿음이다. 비록 내가 보고 있는 신호는 붉은 색이지만, 나는 예상한다, 내가 신호등 밑에 설 때는 녹색 불로 변해 있을 것이라고. 무엇이 나의 이런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가? 경험과 학습이다. 나는 수 많은 시간 신호등을 관찰하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빨간 색에서 초록 색으로, 또 노란 색으로 바뀌는 신호등을 경험하며 내 앞에 새로이 등장한 신호등도 예전에 경험한 것과 유사한 유형으로 작동할 것을 예상한 것이다. 물론 갑작스런 번개로 인해 신호등이 점멸하게 될 수도 있고, 혹은 완전히 꺼져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 과학적 신념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 내 지식체계를 더욱 정교히하여 더욱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식을 생성한다.

내 신앙은 어떠한가? 내가 기대하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지 못할 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을 때,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내게는) 새로운 그 모습을 궁금해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나에게 기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부정하는가? 혹은 그냥 못본척 무시하고 마는가? 내게 있어서 하나님은 정말 이 과학적, 합리적 사고 체계보다도 공고하지 못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고, 나의 나됨을 계획하시고 실현하신 분인데, 저는 종종 제 작은 틀 안에 하나님을 제한함으로 새롭게 알게 되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앎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과학, 패러다임, 하나님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은수씨
최강희가 나오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가 종영하였다. 마지막 편은 미처 보지 못하였지만, 15편에서 이선균이 분한 김영수, 아니 태경이 극 중의 오은수 (최강희 분)에게 말하는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은수는 부모님의 불화를 결혼 상대자에게 말하지 못하여서, 그 부모님께 전달하는 것이 두려워서 주저하다, 미루다 나중에 일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어렵지만 태경에게 말을 꺼낸다. 어쩌면 이혼하실 지도 모르겠다고. 그렇지만 태경은 이 말을 듣고 심각하기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의 상념에 약간은 말을 듣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빙긋이 웃고만 있다. 그러곤 자신의 정혼녀에게 말한다. "그 것 때문에 고민했어요? 그 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은수씨. 그런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라고 말한다. 물론 정확한 인용이 아니다. 어디 찾아보면 정확한 대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하간,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태복음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마태복음 18장 23-35절 말씀은 다음과 같다.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요약을 하자면 일만 달란트 즉 도저히 갚을 재간이 없는 빚을 진 자가 엎드려 사죄함으로 그 빚을 탕감 받았는데 일백 데나리온, 즉 자신이 빚을 진 것의 육십만 분의 일을 빚진 자에게 분을 내며 그를 옥에 가두고 빚 독촉을 하는 장면이다. 즉,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자면 태경은 자신의 복잡하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할 비밀을 숨기고 있기에 은수의 그런 고민들은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아름다운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행동인데도, 우리의 실제 삶에서는 드물고 오히려 인용한 성경과 같은 경우를 더 많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은 어떤 연유인가? 나중에 잠적하게 되는 태경을 떠올린다면 이는 다소 낭만적으로 묘사된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보다 리얼리티를 살리자면 태경은 은수 앞에서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질 못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태경은 이 상태로 결혼을 치룰 수 없고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게 마련이다. 이 만남도 회피하고 싶지만,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나설 수 밖에 없는 그런 만남인 것이다. 또한 마음먹기론 마지막 만남이 아니겠나. 그런 태경에게 은수의 이야기는 돈 많고 전도 유망한 김영수의 아내로 부족해 보이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상황은 자기 분열적인 상황인 것이다. 이중적으로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시선으로 나를 보지 못하고, 내 문제를 인지하는 데 있어서는 방어적으로 대처하며, 또한 상대방이 인지하는 나는 내면의 나와는 분리된 내 페르조나로만 인식하기에 내가 정성껏 꾸며온 페르조나를 손상하는 상대를 용서하기란 쉽지 않은 그런 자기분열적인 상황 말이다. 언뜻 이렇게 이야기하면 심각한 정신병리학적인 상태로 보이지만, 대부분 우리의 삶이 이런 부분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논리적으로 너무 당연한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어이없는 저 성경의 비유가 더욱 현실적인 이 시대를, 아니 나 자신을 난 이 드라마에서 보았다.

나는 왜 내 이웃에 너그럽지 못한가? 난 왜 이 사람들에게 화가 나 있는가? 이 문제에 답을 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페르조나가 아닌 내 내면의 나를 발견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인식한다면 아마도 주변과 빚은 마찰이 실은 내가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본다.

나는 왜 너그럽지 못한가?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수씨"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너그러움, 달콤한 나의 도시, 데나리온, 드라마, 용서, 이선균, 최강희


사울과 이명박
사무엘 상 8장에는 사무엘이 늙어 그 아들들을 사사, 즉 제정일치 시대의 정치 및 종교의 지도자를 삼았으나 그 아들들은 사무엘과 같은 신망을 백성들로부터 얻지 못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와서 그들에게 별도의 정치적 지도자인 왕을 구하게 된다. 사무엘은 지산과 아들들을 대적하는 이 요구를 탐탐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신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 사무엘을 하나님은 다독이시며 백성들이 대적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 여호와를 대적함이라고 위로하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추진하는 일의 불편 부당함을 강조하고 이의 공익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포장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사무엘도 하나님께 그 뜻을 구치 않았다면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왕을 구하는 것은 사사인 나 사무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닌 너희 왕 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임을 알고 썩 물러나거라" 라고 말했을 법하다.

이명박이 정말 장로라면, 또한 그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 모인 조용기 등이 목사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들어 옳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뜻을 따르기를 허락하신 것을 상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장로 대통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알고 그 뜻을 구하는 자가 리더가 되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양 포장을 하려고 든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용모가 출중하던 사울 왕은 바로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버린 왕이 된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는 왕처럼 보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또 온전히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한 것이 그가 비참한 말로를 맞게 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아들 다니엘도 불우한 최후를 맞게 하지 않았던가?

CEO 대통령, 이명박 역시 늘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를 포장하기 위한 것이지, 그가 정말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그 뜻을 구하고, 당신께서 경영하시는 것에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는 자인가? 사울에게 변명할 여지는 충분하고 차고 넘침이 있다. 전쟁에 임해서 사무엘이 기다리라고 한 시간이 지남에도 나타나지 않자, 그 휘하의 제사장을 동원해 제사를 지낸 것이 무에 그리 큰 잘못인가? 진멸하라 한 족속의 수장을 잡아 온 것이, 소와 염소들을 죽이지 않고 가져와 제사에 사용함이 대단한 잘못 축에나 든단 말인가?

그의 행위가 부도덕한 것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진정 다스리는 분으로 알고 섬긴 것이 아니라, 통치 행위를 위한 요식행위로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이명박 장로의 미래가 암울할 수 밖에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사무엘, 사울 왕, 이명박, 이명박장로, 쥐박이, 쥐새끼, 촛불


I-message
인간 관계를 논하는 분야에서는 아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화법이다. 서로 사귀는 연인 간에, 혹은 부부 간에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바로 이 아이-메시지를 사용하라고 한다. 또한 부모-자녀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간의 세대차이가 있으므로 대화에 있어서 간결하고 명확한 I-message의 사용은 가히 필수적이라 할만하다.

아이 메시지라고 하는 것은 별다른 것이 없다. 말을 빙빙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처의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옷이 좀 부담스럽네. 혹시 다른 옷이 없을까?"라고 말을 하라는 것이다. 이를 가지고 "머리 모양이랑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면 아내는 "머리에 핀을 꽂아 볼까?" 라고 반응할 수도 있고, 혹은 "요즘 약간 언발란스한게 유행이야"라고 한다면 뭐라 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불편한 마음으로 참고 있다, 아주 별 것이 아닌 상황에서 폭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은 해보았는가? 아이에게 부모는 무엇을 아이가 하기를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위험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아이에게 나름대로 교육적(?)으로 대한다고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구나"라고 부드럽게 말한다면 아이는 이 일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기 보다는, 하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큰 무리는 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괜히 교육적인 부모가 되기 위해 부드럽게 제지하다, 결국 아이가 일을 저지르고 나면 큰 소리를 내며 아이를 혼내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의외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역시 이 아이 메시지에 약한 경우가 많다. 그가 강하게 그 카리스마를 유지하고 있을 경우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정말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요즘 드라마 일지매를 보면 왕은 드러내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아래서 그 심중을 헤아려 "알아서" 그 일 처리를 하는데, 사실 매번 그 뜻을 맞추기도 힘들고, 종종 더 나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경우까지 그 지도자는 의도하고 나중에 발뺌의 구실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자가 이런 경우에 당해 처벌을 받게 된다면, 정말 그 지도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박정희의 경우도 사실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과도하기는 하지만 알아서 내 마음을 실천해주는 차지철을 신뢰하는 박정희는 자신의 생각을 완곡하게 김재규에게 전하지만, 이를 김재규는 오해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대안을 자꾸 내보지만 면박당하고 소외당하고 만다. 박정희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재규에게 만약 박정희가 "난 사람들이 좀 다치더라도 내 권력을 지키고 싶어"라고 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김재규와 아규는 할 수 있었겠지만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전에 김재규가 중정을 떠나지 않았을까?

심심상인, 염화미소 등으로 미화되는 이 에둘러 화법은 서로 잘 통할 때는 무한한 신뢰가 형성이 되지만,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는 갈등의 원인이 되고, 불신의 맹아가 된다는 점에서 늘 칭송받기엔 무리가 있다. 아니 도움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드물 수도 있다. 내 입으로 솔직한 내 마음을 발화하게 되면 상대에게도 분명한 내 의사가 전달이 되겠지만, 나 역시도 스스로의 언어로 명확하게 사고가 정리되는 피드백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I-message, 드라마, 심심상인, 아이메시지, 염화미소, 육아, 일지매


코끼리를 탄 윤이
윤이의 도심의 자연

기획 의도
1. 변환지식
지식의 습득 및 전달 과정은 매우 다양한 해석과 번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전이 과정을 일일이 살피다보면 지식의 성격 자체가 바로 이 변환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수학을 예로 들자면 방정식의 계산은 그래프와 기하와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통계에 있어서도 척도를 통해 얻은 원 점수를 집단의 분포와 비교하여야 하고, 이를 통해 전체에서 특정 점수의 상대적 가치를 얻게 된다. 대수에서 역시 2 더하기 2는 하루에 두시간씩 이틀 동안 공부한 학생의 전체 공부한 시간의 절대 양을 계산하는 것으로 변환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우리가 세상을 읽는 방식 역시 특정한 패러다임을 기반해서 핵심 요소들이 어떻게 각 사안에서 작동되고, 또 이를 분석할 수 있는 가가 사회과학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문학 역시 내게 해당 내용을 비교하여 유사점과 특이점을 견줄 원형(archetype)이 내게 없다면 새로운 내용을 습득하는데 드는 시간이 오랠 뿐 아니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수도 있다.

2. 자연
창의력의 측면에서도 자신이 가진 지식을 다양한 분야에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유능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를 역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딱딱한 방법이 아닌, 아이들이 맞딱뜨린 문명이 자연의 어떤 애널너지(analogy)를 가지고 있나를 환상적인 방법으로 탐험하게 하고 싶다. 특히 이미 우리세대가 겪은 그 자연의 많은 부분이 아이들에게는 제한이되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 중에 칡은 껌 처럼 씹어본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산에서 진달래를 따서 직접 먹어본 아이들이 있기나 할까? 아카시 나무에서 한줌 훑은 꽃의 꿀을 먹어보았을까? 내 딸 윤이가 크면서 야트마한 뒷동산에 올라 싱아나 가시나무 순을 질러 먹어볼 수는 있을까? 철사 구부려 개구리 낚시를 만들어 볼 기회가 있을까? 우리 문명 속에서 아이들이 더 예민하게 자연을 발견하기를, 또한 자연이 우리 삶에 얼마나 풍성한 analogy를 제공하고 있는지 민감하게 관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빠와 함께 버스를 탄 윤이는 너무 신이 났다. 차창 밖으로는 바퀴가 18개나 되는 커다란 트레일러가 지나가고 있었다. 윤이는 문득 궁금해져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저건 왜 트럭이에요? 왜 버스가 아니에요?"
아빠는 "창문이 조금 밖에 없는 것은 트럭이야. 버스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다니니깐 창문이 많이 있어. 사람들은 윤이처럼 밖을 보고 싶어 하거든. 그런데 저기 Eighteen Wheeler 라고 불리는 트레일러는 창문이 앞에만 있잖아. 운전하는 기사 앞과 옆에만 창문이 있어. 뒤에는 짐을 싣고 가니까 창문을 만들지 않은거야."

윤이가 탄 버스는 신호등 앞에 멈추었습니다.
"아빠. 빨간불이에요. 빨간불에는 멈추는 거에요!"
"그래, 그럼 노란 불에는 어떻게 해야지?" 아빠가 물었습니다.
"천천히! Slow down 해야되요." 윤이가 답하는 순간 신호등은 다시 초록 불로 바뀌었습니다.
"아빠! 초록불이에요. 이제 다시 출발하는 거예요!"

버스는 조금 더 나아가 정거장에 멈추었습니다.
정거장에 멈추더니 버스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나며 앞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윤이는 무서웠습니다. 차가 앞으로 기울자 넘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한 손으로는 의자를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아빠 손을 꽉 잡았습니다.
"아빠, 무서워요. 차가 고장 났나봐요."
"아니야, 차가 고장난 게 아니라, 다리가 불편한 승객을 태우려고 버스가 낮아진거야."
"바퀴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요?"
"응, 저기 봐. 할머니가 타시잖아. 이제 다시 버스가 높아질거야"
"쉬~익" 바람소리를 내며 버스 앞 부분이 다시 원래 높이로 올라왔습니다.
"우와, 멋있다. 차가 다시 높아졌다!"
기울었던 차는 다시 원래 모습이 되어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거장에 도착해서 버스는 다시 앞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번엔 운전을 하던 버스 기사가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빠, 이번엔 정말 차가 고장난것 같아요."
"글쎄. 기사 아주머니가 어떻게 하시는지 한번 볼까?"
버스 기사는 휠체어 표시가 된 곳의 의자를 접으며 차를 넓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휠체어를 탄 언니를 도와서 그 곳에 휠체어를 묶어서 흔들리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버스는 바람 소리를 내며 원래 높이로 돌아왔습니다.

"아빠! 버스가 코끼리 같아요."
"그래? 왜 코끼리 같지?"
윤이는 손을 들어 설명을 했습니다.
"왜냐면, 버스가 앞으로 이렇게 숙이니까 마치 코끼리가 앞다리를 구부려서 사람들을 태우는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윤이는 사람들을 태워주는 코끼리를 생각했구나. 정말 그러고보니 이 버스가 코끼리 같네."

윤이는 너무 신이 났습니다.
코끼리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거든요.


이어질 글 소재...
행글라이더와 새
tour duck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동화, 코끼리


햇님, 달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라는 명대사로 잘 알려진 이 전래 동화는 전래동화의 특성상 제목이 전하는 곳마다 조금씩 다르고 그 결말도 각자 다른데 대부분은 해피엔딩을 강조하기 위해 햇님 달님이라는 제목을 다는 것 같다.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해주며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혹은 구전되며 스며들었을 사람들의 생활 상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이 이야기를 다시 풀어보고자 한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1 산 속에 한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 *2
이 집에는 사이 좋은 오누이가 홀어머니와 살고 있었습니다. *3
하루는 어느 대가의 잔치를 도우러 새벽부터 어머니는 길을 나섰습니다.
어머니는 아직도 길이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서며 아이들에게 말 했습니다.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 맛있는 잔치 음식을 얻어 올테니 동생이랑 잘 놀고 있거라."
눈을 부비며 엄마 말씀을 듣던 오빠는 이내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4
엄마가 준비해 두신 밥도 스스로 잘 차려 먹고 하루 종일 오빠와 동생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오누이는 잔치에서 힘들게 일하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 놀고 난 후에는 청소도 깨끗하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일이 끝나자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광주리에 떡을 얻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5
이미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그 어머니가 집으로 향한 때는 호랑이가 나올 만큼 캄캄하게 어두워진 뒤였습니다.
희미한 별빛을 따라 고개를 넘던 어머니 앞에 떡 하니 집체만한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호랑이는 깜짝 놀라 벌벌 떨고 있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뭐요?"
어머니는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잔치집에서 얻어 온, 우리 아이들에게 줄 떡이다."
그러자 호랑이는 말했습니다.
"그 떡 하나만 맛 봅시다. 그럼 내 잡아 먹지 않을 터이니"
어머니는 바구니를 내려 떡을 하나 던져주었습니다.
던져준 떡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호랑이는 낼름 받아 먹고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호랑이가 사라지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머니는 걸음을 재촉해 얼른 집으로 향했습니다.
두번째 고개를 넘으려는데 호랑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리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떡 한덩이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받아먹고는 어디론가 또 사라졌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호랑이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힘껏 달렸습니다.
세번째 고개에 다다르자 다시 그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호랑이는 또다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라고 어머니를 을러댔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줄 떡 밖에 남지 않았다"고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렇다면 어머니를 잡아 먹겠다고 으르렁댔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떡 하나를 더 던져주고는 고개를 넘어갔습니다.
마지막 고개에 다다른 어머니는 저 멀리 집이 보이자 안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또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떡을 모두 주었기 때문에 더이상은 없다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그 옷을 입어 어머니처럼 꾸몄습니다. *6

한편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쳐 꾸벅 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짝에게 신호를 보내던 부엉이소리도 잦아들어 조용해졌습니다.
사립문을 밀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싶더니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방안 문고리는 걸려 있었습니다. *7
소리를 듣고 깨어난 동생이 "엄마다" 소리쳤습니다.
문을 열어 주려는 순간 오빠가 "잠깐만" 어머니가 아무에게나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하셨잖아" 라고 말렸습니다.
동생은 다급히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 맞지?"
문밖에 선 호랑이는 대답했습니다. "그래 에미다."
그러자 동생이 "거봐, 엄마 맞잖아"라고 하며 오빠를 흘겨 보았습니다.
다시 오빠는,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렇게 굵고 거칠죠?" 라고 물었습니다.
동생은 그제서야 목소리가 다른 것을 깨닫고는 "우리 엄마 목소리는 보드랍고 예쁜데" 라고 말했습니다. *8
아이들이 녹녹치 않음을 깨닳은 호랑이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어 말했습니다.
"밤 바람이 너무 차서 감기가 걸린 모양이다. 춥구나, 어서 문을 열거라"
"엄마가 춥다잖아. 어서 문 열어드리자." 동생은 오빠에게 빨리 문을 열라고 채근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침착하게 다시 물었습니다.
"여기 문 틈으로 손을 넣어 보세요."
호랑이의 크고 털이 복실복실한 앞발이 문 밑으로 수~욱 들어왔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어, 우리 엄마 손은 곱고 보드라운데 이 손은 너무 털이 많아요."
호랑이는 아차 싶어서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밀가루를 찾아서 바르곤 다시 손을 내 밀었습니다.
"밤 바람이 차서 그렇단다. 이제 다시 보거라."
하얗고 부드러운 밀가루를 바른 손은 마치 어머니 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 문을 막 열려던 동생을 오빠는 또 말렸습니다. 문 밑으로 들어온 호랑이의 발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오빠는 호랑이가 엄마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오빠는 호랑이에게 말했습니다.
"방이 지저분하니 잠간만 기다리세요. 얼른 치우고 문을 열어드릴게요."
오빠는 동생과 함께 뒷문으로 나가 우물 가 밤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문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호랑이는 집을 한바퀴 빙 돌다가 뒷문이 열린 것을 알았습니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찾던 호랑이는 우물에 비친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우물을 들여다보며 호랑이는 물었습니다.
"얘들아, 그 속에는 어떻게 들어갔니?"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내려 오긴요, 우물가에 있는 두레박을 타고 내려왔지요."
오빠의 말을 그대로 믿은 호랑이는 두레박을 타고 우물 속에 뛰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물 속에는 오누이가 없었습니다. 대신 호랑이는 찬 우물 속에서 허우적댈 수 밖엔 없었지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이 배꼽을 잡고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제서야 호랑이는 속은 것을 알고 하늘을 쳐다보곤 아이들이 나무 위에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호랑이는 우물에서 나와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그 높은 곳에 올라 갔니?"
오빠는 대답했습니다.
"부엌에 있는 참기름을 손에 바르고 올라왔지요."
호랑이는 부엌으로 달려가 참기름을 네 발에 다 바르고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발이 기름으로 더욱 미끄러워 연신 엉덩방아만 찧고 말았습니다. *9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은 또 웃으며 말했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찍어 올라오면 되는데..."
호랑이는 그제서야 또 속은 것을 알고 도끼를 찾아 나무를 찍어 한발, 한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10
이제 오누이가 도망갈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오누이는 손을 맞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이 호랑이로부터 우리를 살리시려거든 저희에게 튼튼한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혹 죽이시려거든 썪은 동아줄을 저희에게 주세요"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 하나가 내려왔습니다.
오누이는 그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나무에 오른 호랑이는 분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오누이와 똑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튼튼한 동아줄을 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썪은 동아줄을 주세요."
그러자 이번에도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냉큼 이 동아줄을 붙잡고 하늘로 오르던 호랑이는 그만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11
하느님께서 호랑이에게는 썪은 동아줄을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썩을 동아줄을 타고 오르던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날카로운 수수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수수는 지금까지도 붉은 색이 없어지지 않고 있답니다.
한편, 하늘에 올라간 이 오누이의 가엽슨 어머니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 하느님은 오빠는 해로, 동생은 달이 되게 했답니다. *12


1. 생각보다 그렇게 먼 옛날이 아니더라도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었답니다.
2. 전체 이야기 정황 상 이 집은 마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골의 외딴 집이 한칸 덩그러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 이 이야기는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전쟁으로 혹은 사고로 혹은 흔치는 않은 경우지만 남편의 변심에 의해서 였든) 싱글 맘이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삶의 터전을 산 속에 잡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4. 요즘 들어 양성평등에 관한 생각 때문인지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로 바꾸어놓은 동화책도 보았습니다만, 결말에 남자 아이가 양의 상징인 태양이 되고, 여자 아이는 음의 상징인 달이 되는 것으로 태양인 오빠가 손 위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5. 왜 떡이었을까요? 왜 잔치에서 하필이면 떡을 얻어 왔을까요? 잔치 음식은 엿이나 과자류도 있고, 고기 산적, 파전, 국수 따위도 많이 있었을 터인데 하필이면 왜 떡이었을 지 생각해 보았습니까? 쌀이 귀하던 시절이니 떡 역시 흔치 않은 음식이었겠지만 다른 잔치 음식에 비하면 그닥 좋은 음식인 줄은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떡은 잔치 집에 일해 주러 간 그 어머니의 선택, 즉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이기 위한 음식이었을 가능성이 그 하나요, 잔치 집에서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일손 거들러 온 그 산골 아주머니에게까지 줄만큼 많지 않았던 것이 둘 째 가능성일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새벽부터 일한 노동의 댓가로 그 어머니는 떡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6. 왜 호랑이는 처음부터 어머니를 잡아먹지 않고 떡을 하나씩 빼앗아 먹은 뒤에 어머니를 잡아 먹었을까요? 어머니가 떡이 있다고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어머니가 떡을 주려고 했던 아이들에게 까지도 욕심을 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집에 가까운 곳에까지 어머니가 이르게 한 뒤에 어머니를 잡아먹어서 어머니가 없는 무방비 상태의 아이들을 손쉽게 얻으려 한 것이지요. 또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호랑이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호랑이가 이야기가 전해지던 당시의 탐관오리들을 자연스럽게 지칭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권력자들은 처음부터 (목숨을 내어 놓으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럴 힘이 있고 결국은 그렇게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작은 간식거리인 떡 정도만을 요구해 민중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요구에 응하게 만듭니다. 오히려 잡아먹지 않는 대가로는 너무도 작은 것이고 그렇기에 목숨을 살려주고 떡만을 취하는 호랑이는 오히려 고맙게 까지 느껴질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 불합리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반복되던 내 삶의 조건이 그 떡이 다 떨어지고 날 때엔 생명을 요구하는 최고장이 되어서 돌아오게 되는 것은 팍팍한 민중의 삶의 결말입니다. 당연하지 않은 그들의 떡을 달라는 주장을 수용함으로써 그 어머니는 생명을 내 놓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그 호랑이를 아이들이 살고 있는 자기 집으로 이끌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호랑이 밥이 되었던 운명을 의도하지 않게 자식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7. 91년 부모가 모두 일을 간 사이 집에 남겨져 있던 세 남매는 엄마가 밖에서 문을 걸어두었기에 모두 화재로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정태춘의 노래로도 만들어진 그 이야기는 제게 아이들이 남겨져 문이 잠긴 이야기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세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이 두려운 세상에 나가는 것으로 부터 보호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8. 이 글에서 동생은 항상 철 없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를 다 드러내 놓는 역할을 합니다.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은 항상 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세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오빠에게 지켜야할 동생이듯 민중들 역시 이런 적을 이롭게 하며 분열을 야기하는 세력과 함께 해야만 합니다.
9. 호랑이의 이런 지혜 없는 행동을 보며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함께 느꼈을 것입니다. 찬 우물에 빠진 행동이나 연신 나무에서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은 바로 아이들마저 잡아 먹으려는 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호랑이는 예전이나 오늘이나 여전히 모르는 것 같습니다.
10. 일시적으로 오누이가 호랑이를 따돌릴 수는 있지만 결국엔 호랑이에게 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땅 민중의 삶인가 봅니다. 밤나무또한 영원한 피난처는 되지 못하는 것이고, 끈질긴 호랑이가 결국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싸움입니다.
11. 결국 호랑이를 떨어뜨리는 것은 오누이의 지혜가 아니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니 많이 묵었다 아이가?"라고 말씀하시며 그 호랑이를 떨어뜨리신 하나님. 권력자의 처단은 민중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몫이라는 옛 이야기의 교훈이겠지요.

12. 온갖 별자리의 신화도 마찬가지고 아이들이 해와 달이 되었다는 것은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듣던 때부터 줄곳 내게는 해와 달이 된 앙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해피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되살아난 것이 아니고, 부모 없는 아이 들을 하나님은 이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결코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셨던 것일까요? 해와 달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사실 우리 사회는 그 해와 달이 부모가 없이도 우리 속에서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그래서 하나님께서 또 다른 오누이를 거두어가시지 않도록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동화, 햇님과 달님, 호랑이


영어 뉴스 음성과 무료 대본을 볼 수 있는 곳, NPR news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국의 교육방송? 혹은 KBS 쯤으로 해두어야 겠다. National Public Radio (이하 NPR)은 마치 텔레비죤계의 Public Broadcasting Service (이하 PBS)와 같이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이다. 지역마다 주파수는 다르고 그 편성도 조금씩은 다르지만 미국에서 보기 드문 공영 방송으로 상대적으로 다양한 국제뉴스도 많이 접할 수 있는 채널이라 많이 청취하고 있다. 이 곳에서 많은 기사들은 유료로 그 대본(transcript)을 제공하는데 무료 transcript만 모아서 따로 제공하기도 하므로 영어 공부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알아 듣든 못알아 듣든 듣는대로 무조건 따라서 말하는 것도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사람들마다 습관이 다르니 이렇게만 공부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름대로 선별된 뉴스를 제공하고 있으니 뉴스를 통해 상식도 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같다.

다음의 페이지를 방문하면 된다.
http://www.npr.org/templates/archives/archive.php?thingId=1101



그리고 NPR에 제공되는 뉴스 중에 Public Radio INternational(PRI)와 BBC 등이 제작하는 the World 는 MP3 형태로 파일을 제공하므로 플레이어에 저장하여 듣기에 편하다.

http://www.theworld.org/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Be prepared to STOP?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여름 방학이어서 그런지, 학교 안에 각종 공사가 많다. 그래서 셔틀버스도 원래 route를 벗어나 detour 하는 경우가 많은 데 공사 표지 중 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주~욱 보아왔겠지만 왜 이게 이제서야 보였는지... 제목에 적은 것 처럼 Be prepared to STOP 이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왜 prepare to stop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쓴 두 글의 차이가 무엇일까 사실은 초보적인 의문이 들었다. 미국에서 산지 꽤 되었는데도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좀 한심하게도 보일 법 하다. 어쨋든 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이렇다.

만일 내가 Prepare to stop이라고 한다면 이는 반드시 멈추어야 할 상황이 있으니 그 준비를 하라는 것이고, 내가 본 표지판과 같이 수동태로 Be prepared to stop이라고 말한다면 멈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준비된 상태로 있으라는 말이라는 것이다.

영어에서의 수동태는 단순히 내가 동작을 하고 당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의미의 차이를 표현하는 경우가 이와 같이 있다. 시제 역시 단순히 시점의 변화 뿐만이 아니라 의미의 차이를 주는 경우가 있어서 우리 말 습관과는 다른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I was a student" 라고 말하는 것이 "I am a student" 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정보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앞의 말에는 이제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부정의 의미가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이 명확하지 않다면,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글을 직접 소개하겠다. Ham (Amateur 무선통신)을 이용한 PC 통신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접속이 종료되는 것을 알리는 글이 내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You were logged in." 즉 이제는 더 이상 로그인 상태가 아니라는 말인데 난 처음에 이 문장을 보고 접속이 되었다는 말로 거꾸로 알아 들었던 것이다. 굳이 이렇게 클리어하지 않게 말을 쓴 것은 나름의 위트라고 느껴졌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시제가 단순히 시간 이상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영어


방콕을 영어로 말하면? Staycati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태국의 수도 이야기가 아니다. "방"에 "콕" 박혀서 지낸다는 뜻으로 동사로는 "이번 휴가 때 방콕하다" 명사로는 "이번 연휴엔 방콕에 다녀왔다"는 은유로 사용하는 그 방콕 말이다. 영어에도 이런 신조어가 새로이 사전에 등록이 되었다고 하는데 관련 기사를 살펴보자.

http://media.www.dailytexanonline.com/media/storage/paper410/news/2008/07/10/TopStories/Soured.Economy.A.Factor.In.Adding.Word.To.Dictionary-3389851.shtml

텍사스대학교 학보인 The Daily Texan 7월 10일, 2008년 일면 기사에서 기자는 "staycation" 이라는 머물다는 뜻의 stay와 휴가를 뜻하는 vacation 을 조합한 신조어에 이런 해석이 달려 있음을 소개했다. "keeping close to home on annual holidays, rather than taking a vacation"

기사에서 말하듯 영어는 신조어에 상당히 너그러운 듯 하다. 미국에서 교내에서 술을 파는 몇 안되는 대학이라는 위스콘신 대학교 테라스에서 맥주를 시켜먹다가 주변의 두 팀과 함께 앉아서 같이 어울린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젊은 여학생이 화장실을 간 지가 상당히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자, 자리에 남아 있던 한 사람이 아마 "boying" 하러 갔나 보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몇 번을 다시 물었더니, 결국은 "남자질" 정도의 말이었던 것 같다. 영어 만만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막 쓰면 이게 사전에 실리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방콕을 영어로는 staycation 이라고 한번 말해보자.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ag : 신조어, 영어


BLOG main image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일기를 숙제로 내주며 검사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앞에서 일기를 읽으라 하셨다. 일기를 선생님이 읽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 앞에서 읽으라니... 그런데 그 뒤로 일기를 쓰며 혹시 모를 독자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터넷 일기라면, 공개되었지만, 내 단상을 적는 잡기장 정도로 적당하겠다 싶다.
 Notice
아해사랑방을 엽니다.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8)
U N I (자유글) (4)
reUNIfication (한.. (5)
UNI the Girl (사진) (1)
commUNIcation (말/.. (7)
 TAGS
동화 하나님 최강희 너그러움 뽁뽁이 패러다임 데나리온 bubble wrap 버블랩 과학
 Calendar
«   2009/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Entries
Bubble wrap
빨간 신호등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에요, 은수씨
사울과 이명박 (1)
I-message
코끼리를 탄 윤이
햇님, 달님
영어 뉴스 음성과 무료 대본을 볼 수 있는..
Be prepared to STOP?
방콕을 영어로 말하면? Staycation
 Recent Comments
http://www.lewrockw..
아해사랑 - 2008
오마이 뉴스에 좋은..
아해사랑 - 2007
모든 사진은 www.imb..
아해사랑 - 2007
 Recent Trackbacks
Beyond truth
permanent
시스코-애플의 iphon..
뉴스팩토리
iPhone은 성공할수..
맥, 기술, 영화, 도..
 Archive
2008/08
2008/07
2007/02
2007/01
2006/12
 Link Site
 Visitor Statistics
Total : 13,279
Today : 1
Yesterday : 2
rss